콘텐츠로 이동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 개인전 리뷰

새벽안개, 도파민, 그리고 코메디

짙은 안개가 쉬이 걷히지 않을 것만 같은 새벽 경마장의 흰 울타리 너머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분주한 말들. 사회자의 호명과 함께 그날의 경기를 점검하는 기수와 경주마가 출전음악에 맞춰 하나둘씩 등장하고, 경쾌하고 일정한 박자와 멜로디를 따라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뒤를 잇는다. 하지만 이것은 곧바로 전시장 중앙을 가득 메운 인물들과의 사뭇 진지한 대화로 구성된 대형 인터뷰 화면과 섞이면서, 금세 배경음악으로 역할이 전환된다. 그런가하면 한쪽에서는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목장의 평화로운 오후를 담은 영상이, 다른 한 쪽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담은 공원의 풍경이 펼쳐진다.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듯 보이는 이 영상들은 서로 '경마'라는 연결고리로 인해 연결되었다가 다시 충돌하기를 반복하면서 관객의 주의를 뒤흔든다 함정식은 그동안 대상이 지닌 본연의 특성과 그 대상에 특정한 맥락과 상황, 관점이 덧대어지면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충돌을 감각적인 영상 실험을 통해 탐구해왔다. 일련의 그룹전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기존의 작업들에서 사운드와 이미지, 빛과 사물의 움직임과 같이 영상의 기본 단위들을 이용한 형식적 실험의 측면이 강하게 드러났다면(2010년작 <터벅터벅>, 2012년작 , 2015년작 <무드등> 등), 근래에 와서 작가는 영상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초점을 맞춰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그에 맞는 소재를 찾고, 그것의 일부로 깊숙이 들어가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는 관찰자의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기독교의 찬송가를 소재로 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작업 <내게 강 같은 평화>(2012)와 단편영화 <기도>(2014-2015)에서 엿볼 수 있었던 이러한 경향은 경마를 소재로 한 이번 전시에서 그 메시지를 보다 확고히 하고 있다.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는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마를 소재로 엿볼 수 있는 인간사의 복잡한 관계와 그 안에서 감지되는 감정의 여러 형태들, 정서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다 흔히 신문이나 뉴스의 사회면에서 맥락이 제거된 채 만나는 경마 관련 소식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은폐된 이야기가 난무한 스포츠라는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지난 2015년부터 약 2년간 작가는 실제로 경마관련 영상을 촬영하는 일을 작업과 함께 병행하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관찰한 인간사의 모습과 그 전반에 흐르는 심리적 정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이것은 전시에서 다양한 영상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특히 작가는 카메라의 '시네마룩', '필름룩'과 같은 화면의 질감표현과 비율조절방식에 주목하고, 이를 벽과 패널, 모니터와 아크릴을 이용한 다양한 영사 환경을 통해 실험한다. 가방 속에 은밀하게 숨겨진 몰래카메라나 범죄의 한 수단으로 보도되는 등 관습화된 사회의 시선에 의해 진지한 해석의 대상에서 배제되어왔던 경마는 그의 작업에서 나름의 개인사를 배경으로 경마 세계에 20년 넘게 몸담은 경마 예상가들의 연륜 있는 육성 인터뷰를 통해, 회화적 구도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마이산 경관과 장수경주마목장의 목가적 풍경 혹은 한적한 오후 시간을 보내는 경마장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때론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흥겨운 뮤직비디오를 통해 인간사의 여러 모습과 심리에 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 예술의 한 소재로 재탄생한다. 함정식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 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의 정서와 상황을 적극적인 영상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하나의 특정한 소재를 다루되, 이것을 단일한 시선으로 고정하여 바라보기보다는 인물 인터뷰와 회화적 풍경으 기록, 뮤직비디오 등의 다양한 형식과 제각기 다른 화면의 질감과 비율, 분위기를 담은 영상을 상호 병치시켜 연출하면서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작가에게 있어서 대상에 대한 즉물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것이 속한 공간, 사회, 상황 안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가장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한다.

특히 전시의 대표작 (2017)에서 경마 예상가3인이 각기 다른 목소리와 표정으로 전하는 경마장 사람들의 일화는 사회로부터 대상(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 안에서 삶은 얼마나 더 복잡한 얼개를 드러내며, 희노애락의 감정은 그렇게 치열한 삶의 틈새를 어떻게 비집고 나오는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과 예상가들의 삶의 궤적,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한 편의 인생 드라마이자 개개인의 감정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한데 녹아있는 단편 서사이기도 하다.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관습화된 편견들의 이면에는 삶의 도처에 자리한 인간사의 내밀한 감정들이 요동치고 있다. 결국 함정식이 경마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소재를 단순 미화하거나 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경마가 삶의 일부가 된 이들의 시선을 통해 관찰되는 삶의 여러 양태들, 내밀한 관계 속에 숨겨진 인간사의 단면, 그 안에 켜켜이 살아 숨 쉬는 미묘한 감정의 층위들이다. 불특정 다수의 믿음이 만들어 낸 신념, 광기로 치닫는 욕망, 막연한 기대와 배신과 불신 미래를 향한 간절한 바람과 희망, 그 안에서 울고 웃기를 반복하는 감정의 뒤섞임, 이 모두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2017 황정인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감각의 경기장: 함정식의 영상작업에 대한 짧은 노트

함정식의 작업이 겨냥하는 바는 언제나 분명하다. 종종 그는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것을 지시한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것, 이는 그의 작업에서 시종일관 견지되는 원칙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가리키겠다고 한 대상을 정확히 가리킬 뿐인데도 그의 작업을 통해 포착된 대상은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 감각을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실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임을 뜻한다. 사물과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소재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해도 좋겠다. 이를테면 그가 걷기라는 움직임에 주목할 때는 특정한 걷기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감각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는 ‘터벅터벅’이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걷기라는 것을 일정한 주기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만드는 두 다리의 어긋남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이다. 그리고 제법 활기차게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두 번 촬영한 후 각각의 영상을 좌우로 이어 붙여 ‘터벅터벅’에 상응하는 시각적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가 찬송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면, 우리는 작품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찬송가는 물론이고 찬송가와 결부된 종교적 요소들(십자가, 교회, 숭고한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여신도의 홀린 듯한 몸짓)을 더불어 보게 된다.

함정식은 모종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란 환유의 체계를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환유를 작동시키는 보조관념들을 성실히 이어 붙인 다음 그러한 보조관념들의 몽타주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이 원관념(이라고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감각과 결코 동일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함정식은 매우 드문 방식으로 영상작품의 몽타주라는 개념에 접근하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가 몽타주를 이해하는 방식은 숏과 장면과 시퀀스 사이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전략으로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몽타주 개념은 범죄 수사에서 활용되곤 하는 초상이나 사진 몽타주, 혹은 여성에게 있어 멋진 눈, 코, 입, 귀, 이마 등에 대한 남성들의 설문을 종합해 만든 초상이나 사진 몽타주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이러한 몽타주는 초상이나 사진을 통해 지시하고자 하는 인물(형)에 대해 목격자나 증인이나 설문 응답자가 묘사한 세부를 가능한 정확히 묘사한 것이지만, 그것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오히려 보는 이에게 기묘하게 낯선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흔히 사행성 스포츠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경마를 소재로 한 전시 (2017)에서도, 몽타주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전시 공간에 배치된 영상작업들 각각이 서로 길항하는 가운데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경마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탐문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경마를 구성하는 일련의 요소들(경마장, 예상가, 새벽조교 및 경기기록 영상, 경주마 목장, 관중)의 몽타주가 경마에 대한 상투적 관념과 어긋나고 충돌하는 감각의 경기장을 마련하고 그 자리에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2017 유운성 영화평론가


Review

서늘한 사루비아다방의 지하 전시 공간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강렬한 음악과 함께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경마 장면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 설치된 듯한 모니터 한 켠에는 경마 장면과 강렬 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고, 반대편에는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장면을 연상시키는 마사의 느린 풍경이 보인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이 영상들을 지나 인터뷰 영상 앞에 앉았다. 이따금씩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거슬 리긴 했지만 이내 예상가들의 인터뷰를 보기 시작하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전시 타이틀을 통해 나의 예상을 확인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던 나는 “역시!”의 순간을 기다리며 영상을 감상하고 메모를 끄적였다. 그러다 이내 후렴구로 치닫는 노랫소리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순간 다시금 어떠한 구성 요소로써의 영상들 제각각 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 전시를 보러 왔었던가?

함정식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는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경마장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사루비아다방을 실제 혹은 가상의 사건, 인물, 장면이 중첩되고 뒤섞인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싱글 채널 작품 (2017)는 인터뷰의 내용뿐만 아니라 인터뷰이들의 세심한 표정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우리는 종종 예정된 결말을 기다리는 자세로 결론을 확인하기 위해 영상 작업을 본다. 우리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예상 가능한 것’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속단하고 확신하는가? 자신의 경험과 인식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가치 판단이 사실은 그리 단순하게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하지 않았던가! 함정식은 이런 뻔한 결론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몰입되는 순간을 포착해 부러 균열을 만들고 시선을 돌린다. 그가 다루어 온 쉽게 속단하기 쉬운, 그래서 더더욱 균열을 만들어내기 힘든 주제들은 불협화음을 이끄는 요소들과 맞물려 전시 공간에서 노골적이지 않을 정도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의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문뜩 예술가들은 불가능한 것을 끈질기게 시각화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2017 홍이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Tags:
전시링크, 전시서문